쓰고 고독한 인내···‘122609’ 뱃지의 의미

김인환 기자 / 기사승인 : 2020-06-26 01: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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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609 태극기' 뱃지 <사진=국가보훈처>

 

한국전쟁 국군 전사자 유해 147구가 지난 25일 한국 땅을 밟았다. 이로써 북한 땅에서 발굴된 유해 총 239구의 국내 송환 절차가 마무리됐다. 이런 점에서 이날 거행된 한국전쟁 70주년 기념식은 매우 특별했다.

눈에 띈 건 문재인 대통령이 가슴에 착용한 ‘122609 태극기’ 뱃지였다. ‘122609’는 한국전쟁 당시 국군 전사자 수를 뜻한다. 그리고 대부분 북한 땅에 잠들어있다. 실로 엄청난 수다.

문 대통령은 이 유해를 반드시 찾겠다는 의지로 뱃지를 착용했다. 하지만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어마어마한 유해의 수도 그렇거니와 최근 남북 간 분위기상 유해발굴 합의가 어디 가당키나 할 것인가.

보름 이상 계속된 북측의 ‘악다구니’에 가까운 대남 전략. 이 때문에 이날 문 대통령의 기념사는 어느 때보다 관심의 대상이었다. 대통령도 사람인데 지쳤겠지. 이젠 좀 강한 목소리를 내지 않을까. ‘그놈’의 ‘평화’를 향한 고집, 이젠 내려놓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몇몇 진보 인사나 정부 내에서도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오지 않았나. 심지어 통일부 장관이 사퇴하기까지 한 마당이니 강경 분위기가 힘을 얻는 듯했다.

분명히 이날 대통령의 머리숱은 줄어있었고 얼굴은 푸석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선 또다시 “사이 좋은 이웃이 되자”고 했다. 체제 전쟁은 끝났다며. 참으로 끈질기다.

다만 패러다임은 약간 달라진 듯 보였다. 오랜 기간의 평화공존 체제를 이루자는 것이다. 통일에 대한 조급함은 확실히 보이지 않았다.

이해관계가 얽힌 주변국은 한반도의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 이는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볼턴의 회고록을 통해 확실히 드러났다.

사실상 문 대통령은 미국에 뒤통수를 맞았다. 여기에 “대북정책은 실패했다”며 비판하는 듯하지만 속으로 쾌재를 부르는 반대세력도 존재한다. 대통령에겐 이렇듯 외로운 싸움이다.

눈에 띄게 달라진 국민 여론도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통일연구원 등의 자료에 따르면 우리 국민 중 55%가 통일 대신 평화공존을 택했다. 또 ‘통일은 불가능하다’는 의견은 20년 전보다 세배 이상 늘어난 24.5%에 달했다.

특히 젊은 나이일수록 통일에 반대하는 의견이 우세하다. 자칫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정성 다해서 통일’은 한낱 진부한 구호가 돼가는 분위기다. 하지만 결론은 ‘이 겨레 살리는 통일, 이 나라 살리는 통일’이다. 분단의 장기화는 우리나라를 그 한계가 분명한 섬나라로 만들 뿐이다.

지금 한반도 상황은 분단 독일과 비슷하다. 두 체제를 원했던 동독과 통일을 희망했던 서독. 현재 북한이 가장 원하는 건 체제보장이다.

결국 독일은 45년 만에 통일을 이뤘다. 이에 비해 한반도의 분단상황은 너무나 길어지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통일 의지가 발목 잡힐 수도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갈 길은 결국엔 통일이다.

강세환 시인의 ‘명태가 황태 되기까지는’이라는 시가 있다.

‘대관령 황태 덕장에서 명태가 값나가는 황태 되려면 보통 4개월이 걸린다지 않던가. 그래야 물건이 된다. 속을 다 바라내고. 아, 빈속에 저렇게 꼼짝없이 견디다니. 대관령 강추위 아랑곳없이 눈 섞인 높은 바람에도 끄떡없이 맨몸으로 견디고 있다. 녹았다가 꽁꽁 얼었다가 얼어붙은 채 크게 불어오는 바람에 맞서서 외롭게, 꼿꼿하게 버티는···’

앞서 말한 고작(?) 239구의 유해가 송환되기까지도 북미 합의 이후 무려 25년이 걸렸다.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다. 우리에게 다른 방법은 없다. 쓰디쓴 인내와 의지뿐이다.

문 대통령 시대에 통일은커녕 평화조차 요원할 수 있다. 하지만 상관없다. 그 세상으로 가는 길을 닦고 그곳에 묻힐 수만 있어도 족하지 않은가.

우리의 후손이, 또 그 후손이 그곳을 지나며 기억할 테니 말이다.

 

김인환 기자 director@nex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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