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자]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품위 있는 인생에 대해

김승직 기자 / 기사승인 : 2020-03-20 09:0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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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트뉴스=김승직 기자] 기자는 대학생일 때 졸업을 위해 매학기 하나 이상의 철학 강의를 들어야 했다. 당시엔 그 시간이 너무 지겹고 괴로워 F를 맞기 직전까지 결석하거나 딴짓을 하는 것으로 강의를 견뎌내곤 했다.


몇 번의 강의를 겨우 C학점으로 마무리한 기자는 교수에게 악의를 담아 “철학을 왜 배워야 합니까?”라고 물었다. 교수는 “철학은 인생을 품위 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했다.

가끔 그때의 대답이 새로운 질문으로 떠오르곤 한다. ‘품위 있는 인생이란 뭘까.’

기자는 이 책에서 질문에 대한 답을 얻게 됐다.

다만 반박의 여지가 있는 말은 남의 입을 통해야 하는 법이니 우선 이 책에 관해 얘기해 보려 한다.

이 책의 저자는 니체로, 소설 같은 서사에서 성경 같은 문체로 철학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꽤 독특한 위치에 있는 책이다.

혹자는 이 책을 보고 “니체는 예수의 13번째 제자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 책은 그 유명한 ‘신은 죽었다’는 구절이 나온 책이기도 한데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궁금한 사람들을 위해 교수님의 말을 빌리도록 하겠다.

“과거 기독교 사회는 천국과 지옥, 흑백으로 나눠진 이분법적 사회였습니다. 하지만 인구가 늘어나고 대중의 지적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다원화가 이뤄지게 됐죠. 그 과정에서 대중은 신의 존재는 물론 당시 사회체제의 의문을 품게 되고 시대는 새로운 사회를 맞게 됐습니다. 즉 ‘신은 죽었다’는 말은 다원화가 이뤄지며 기독교적 이분법이 죽었다는 뜻입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니체 철학의 정수를 응집해 놓은 책이기 때문에 너무 방대하고 어려워 이해하는데 다른 니체의 책이 필요할 정도다. 이 책 때문에 두어 권의 책을 더 구매한 기자는 이를 ‘고전주의 마케팅’이라 부르며 치를 떨었다.

때문에 이 책을 어떻게 요약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다만 이 책이 ‘깨달음을 얻은 차라투스트라가 함께할 동료를 찾기 위해 떠난 여정’을 담은 것은 확실해 보인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표지 <사진=문예출판사>

 

작중 차라투스트라는 동굴에서 나와 숲·마을·섬·배 등을 거쳐 다시 동굴로 돌아오는 것을 반복하며 만남·가르침·친목·이별·깨달음을 경험한다.


아쉽게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재밌다’고 느껴질 만한 줄거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또 대화를 중심으로 서사가 이어지기 때문에 넋 놓고 읽다간 차라투스트라의 행방을 놓쳐 책 속에서 길을 잃기 쉽다.

다만 이 책은 니체의 사상이 주인공의 여정과 가르침에 메타포로 녹아있다는 점에서 가치 있게 평가된다.

이 책에서 기억해야 할 중요 키워드는 ‘허무주의(니힐리즘)’ ‘영원회귀’, ‘초인’ 등 3가지다.

차라투스트라가 얻은 깨달음은 ‘허무주의’고 그의 목적은 함께 ‘초인’이 될 동료를 찾는 것이며 그 여정은 ‘영원회귀’를 암시한다.

위 3가지 개념을 모두 언급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하나로도 책 한권 분량의 논문을 작성할 수 있기에 기자가 가장 감명받은 개념인 초인을 중점적으로 다뤄볼까 한다.

앞서 허무주의와 영원회귀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허무주의는 기존의 신·구원·진리와 같은 절대적 가치 및 권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에서 창발 된 사상이다.

허무주의는 ‘완전무결하거나 영원한 것은 없고 모든 것은 생성·변화·죽음을 반복하기 때문에 현재는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아마도 이 사상에 빠진 인간들은 대개 무엇이라도 하려고 능동적으로 변하거나, 염세적인 반응을 보이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영원회귀란 허무주의에 빠진 사람들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제시된 개념으로 삶에 대한 최고의 긍정 형식이라 불린다.

‘이 순간은 이미 수없이 있었고 앞으로도 수없이 있을 것이다. 이 때문에 현재는 의미 없지만, 노력 여하(힘에 의지)에 따라 미래·세상의 방향이 바뀔 수 있으니 최대한 열심히 사는 것이 좋다’란 뜻으로 요약할 수 있다. 

▲ 프리드리히 니체 <사진=위키백과>

초인은 허무주의를 깨닫고 영원회귀를 지침 삼는 인물로 원어는 위버멘쉬(Übermensch)다. (한때 니체의 여동생이 히틀러를 위버멘쉬라 지칭해 니체가 나치라는 설이 돌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그녀의 독단적인 행동으로, 니체는 나치즘을 극도로 혐오했다.)

초인은 만화책에 나오는 초능력자가 아니다. (작중 깨달음을 얻은 차라투스트라의 신체능력이 향상돼 종극엔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긴 한다) 교수는 초인을 ‘스스로 몰락할 의지를 가진 자’라고 표현했다.

기자는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주식하는 사람이란 뜻인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새로운 나를 만들기 위해 스스로를 부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란 속뜻을 가지고 있다.

작중에서 초인이 되는 과정은 낙타(성실)→사자(용기)→아이(시작)의 단계로 묘사된다. 낙타처럼 성실하던 사람이 기존의 관습·규범·관계 등에 저항할 사자와 같은 용기를 갖게 되고 종극엔 모든 것을 긍정하고 창조하는 아이로 다시 태어난다는 뜻이다. 

 

니체는 평생 ‘어떻게 사람은 본래의 자신이 되는가’를 사유해왔다. 거창하게 말했지만, 위의 과정은 있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찾아가기 위함이며 ‘기존의 관습·규범·관계를 벗어던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온전히 긍정하는 인간’이 초인이다.


교수는 철학이 ‘품위 있는 인간’이 아닌 ‘품위 있는 인생’을 만든다고 했다. 기자는 니체가 말하고 싶었던 품위 있는 인생이란 있는 그대로의 나를 긍정하는 삶이라 생각한다.

결국, 교수가 기자에게 가르치고 싶었던 것도 이런 맥락이 아니었을까?

“품위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선 기존의 관습·규범·관계를 잘 따르면 됩니다. 다만 품위 있는 인생을 살고 싶다면 있는 그대로의 나를 긍정하길 바랍니다.”

 

김승직 기자 reporter@nex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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