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윤의 전설을 만나다] 한국유도의 자존심, 업어치기의 달인 전기영①

김병윤 대기자 / 기사승인 : 2020-06-30 09:4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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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NTV>


[편집자 주] 유도는 예를 중요시하는 운동이다. 비겁한 승리를 용납하지 않는다. 깨끗한 패배를 중요시한다. 종주국은 일본이다. 일본은 각종 대회에서 세계정상을 지켜왔다. 정상의 자부심을 갖고 있던 일본 유도는 한국의 강력한 도전에 휘청거렸다. 지금도 일본 유도는 한국을 두려워한다. 한국유도는 일본의 라이벌로 자리매김했다. 한국유도의 성장은 선수들이 흘린 땀의 결정체다. 지도자의 끊임없는 노력도 함께 했다. 한국유도는 올림픽 금메달의 효자종목으로 사랑받고 있다. 올림픽 유도가 열릴 때면 국민은 TV 앞에 모여들었다. 한국유도 선수들의 선전을 보기 위해. 국민은 우리 선수들의 선전에 울고 웃었다.

많은 선수가 금메달로 국민의 성원에 보답했다. 대한민국의 자존심도 세웠다. 값진 금메달의 주인공들 가운데 더욱 빛나는 유도인이 있다. 전기영이다. 올림픽 금메달과 세계선수권대회 3회 연속 우승의 값진 신화를 이뤄냈다.


전기영은 더이상 올라갈 곳이 없었다. 세계유도계의 칭송을 받을 때 매트를 떠났다. 박수 칠 때 떠나며 모든 영광을 훌훌 털어 버렸다. 미련도 없었다. 아쉬움도 없었다. 은퇴 후 수많은 유혹도 받았다. 전기영은 유혹을 정중히 거절했다. 오직 유도인의 길만을 걷기로 했다. 뼛속까지 유도인인 전기영을 만나본다.

Q. 얼굴이 좋아 보인다. 요즘은 무얼 하고 지내는가.

용인대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2005년에 교수 발령을 받았다. 16년 차 교수가 됐다. 내가 보기에도 세월이 참 빠르다. 교수만 하는 게 아니다. 국제유도연맹 심판감독관도 겸하고 있다. 각종 국제대회에 참가하느라 바쁘다. 학기 중에는 국내에 있지만 방학 때는 거의 외국에 살다시피 한다.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즐겁다. 후배들을 가르치는 즐거움이 있다. 국제대회 참가할 때는 국제유도 흐름을 배울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 세계 유도인들과 교류하며 인맥을 쌓아가는 것은 덤이다.

Q. 한창 전성기에 은퇴했다. 이유가 있었는가.

한마디로 너무 힘들었다. 26살 때 은퇴를 했다. 스트레스도 심했다. 주위의 기대가 상상외로 컸다. 모든 대회에 나가면 무조건 우승을 해야 하는 거로 생각들 했다. 전기영은 우승이라는 게 공식처럼 돼 있었다. 그리고 어린 나이에 정상에 일찍 오르다 보니 더 이상의 목표도 없어졌다. 그래서 박수 칠 때 떠나고 싶었다. 훈련도 정말 힘들었다. 대표선수들에게는 태릉세대라는 말이 있다. 지금은 진천세대라고 한다. 태릉선수촌 생활이 상상을 초월했다. 지금의 진천선수촌 생활이 어떤지는 모르겠다. 선수촌 생활이 모두 힘들겠지만 태릉선수촌만큼은 힘들지 않을 거로 생각된다.

그리고 일찍부터 유도와 공부를 병행하고 싶었다. 교수가 꿈이었다. 공부하는 지도자가 되고 싶었다. 은퇴한 걸 후회한 적이 한 번 있었다. 2014년 런던올림픽 때였다. 송대남 선수가 34살 때 금메달을 따냈다. 유도에서는 34살이면 할아버지 취급을 받는다. 송대남 선수가 그 나이에 금메달을 따냈다.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당시 송대남 선수의 몸을 봤다. 완전히 무쇠 같았다. 후배지만 존경스런 마음이 들었다. 정말 진심으로 축하해줬다. 송대남 선수가 시상대에 오르는 모습을 보고 일찍 은퇴한 것을 처음 후회했다. 후회는 그때 아주 짧은 시간에 딱 한 번 했다.

Q. 태릉선수촌 훈련이 어느 정도 힘들었는가.

훈련시간보다 훈련 강도가 일반인들은 상상조차 못 한다. 예를 들어 줄타기 훈련을 얘기하겠다. 훈련장 안에 줄이 걸려있다. 10번 타는데 40분에서 1시간 정도 걸린다. 경량급 선수들은 금방 올라간다. 10번을 타는 데도 오래 걸리지 않는다. 우리 같은 중량급 선수들은 2번만 올라갔다 오면 온몸에 힘이 다 빠진다. 죽을힘을 다해 올라갔다 오면 선생님들의 호통 소리에 다시 올라가야 한다. 물론 그런 훈련을 했으니까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었던 거는 확실하다. 그런 훈련과정을 거치는 게 장난이 아니었다.

Q. 훈련에서 쌓이는 스트레스는 어떻게 풀었나.

오직 토요일에 주어지는 외박만 기다렸다. 일주일 내내 밥 먹고 훈련만 하는 다람쥐 쳇바퀴 생활을 했다. 토요일 외박을 앞둔 금요일부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물론 유도 종목만이 아니었다. 모든 종목 선수들이 똑같았다. 토요일이면 태릉선수촌이 시끌시끌했다. 멋 내는 선수도 많았고 외박 나오면 그동안 못 만났던 친구들과 술도 마시고 떠들기도 하면서 보냈다. 지금 생각하니 그래도 태릉선수촌 생활이 추억에 많이 남는다.

Q. 지도자 생활은 어떠한가.

정말 힘들다. 2004년 아테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국가대표팀 코치로 참가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이원희,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최민호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했다. 보람도 있었지만 지도자가 힘들다는 것도 느꼈다.
선수 때는 내 훈련과 선생님들의 가르침에 따르기만 했다. 지도자는 그렇지 못하다. 신경 쓸 게 많다. 선수가 경기에 나가면 목이 쉴 정도로 소리를 지르게 된다. 현역 때보다 몸을 더 쓰게 된다. 답답한 마음에 매트 위로 뛰어 올라가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중요한 건 지도자는 끊임없이 공부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2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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