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트뉴스 인터뷰] <여성 직업인을 만나다> '테일러 메이드' 백지연

김혜민 기자 / 기사승인 : 2020-03-11 12: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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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츠를 맞추기 위해 기자의 치수를 재는 백지연 씨 <사진=디바인핸즈 전주점>

 

[넥스트뉴스=김혜민 기자] 맞춤복 매장이 갈수록 늘고 있다.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맞춤 정장과 셔츠는 이제 여성들 사이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실제로 남성용 맞춤복 매장이지만 여성 고객에게 반응이 좋아 여성 테일러까지 고용한 사례가 있다.

이렇게 맞춤복을 찾는 여성은 많아졌지만, 아직까지 '남초' 업계의 특성상 여성 테일러 메이드는 따로 고용해야 할 만큼 찾아보기 힘든 게 사실이다.

그러던 중 기자는 ‘여성 테일러 메이드 둘이서 운영하는 커스텀 수트 전문브랜드’가 있다는 말에 호기심이 생겨 지난 7일 매장을 찾았다.

매장에 들어서자 단발머리에 재킷을 입은 직원이 기자를 반겼다.

“안녕하세요. 실장 백지연입니다.”

보통 테일러 메이드 매장에 가면 나이가 있는 남성이 메인이고 보조로 보이는 젊은 남성이 목에 줄자를 걸고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백지연 씨의 매장은 대표도, 실장도 여성이다. 게다가 지연 씨는 20대, 실장은 30대라고 했다.

젊은 여성 둘이 테일러 메이드 샵을 차린 계기가 궁금했다.

“한국에서는 입고, 먹고, 사는 문제 중 ‘의’를 가장 앞에 놓을 정도로 의복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만큼 옷에 대한 관심도 높고 유행도 정말 빠르게 지나가죠.

저는 해마다, 시즌마다 변하는 트렌드 속에서 세월이 지나도 촌스럽지 않은 옷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서점에 가면 매번 베스트셀러가 바뀌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책장 속에 스테디셀러가 따로 있는 법이잖아요.

입는 사람의 사회적 지위, 품위와 개성까지 나타내 줄 힘을 가진 옷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그 결과가 ‘맞춤 정장’이었고, 맞다고 생각하는 가치에 투자하기로 했어요.”

지연 씨의 대답은 무척 매끄러웠다. 말투는 강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확신이 느껴졌다.

기자는 팔 기장이 길어 기성복에서 맞는 셔츠를 구하기가 힘들다. 몇 번 셔츠를 맞추고 싶어서 매장을 찾았으나 여성이 셔츠를 맞추는 걸 특이하게 보거나 블라우스 같은 소재와 디테일을 추천해 포기한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 원래 여성과 남성의 정장 디테일이 다른 건지 늘 궁금했다.

지연 씨는 “개인 의견이지만 전 여성과 남성의 정장에 큰 차이가 필요 없다고 봐요. 옷을 맞출 때 심미적인 부분보다 기능적인 관점에 우선순위를 두거든요.

아웃풋은 거의 비슷하게 나와요. 물론 개인의 신체 특성에 따라 달라지는 디테일은 있습니다. 기자님은 어깨가 둥글고 팔이 길어서 재킷이나 셔츠를 맞춘다면 그 부분을 신경 써야 하겠죠.”

‘맞춤 정장’이라는 이름이 부담스러워 매장을 방문하는데 큰 용기가 필요했으나 지연 씨의 농담에 금세 분위기가 풀렸다.

이처럼 테일러 메이드가 여성이라 여성 고객이 편하게 여기는 경우가 있는지 궁금했다.

“여성 고객에게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해 줄 수 있는 게 여성 디자이너의 장점이 아닐까 싶어요. 맞춤 정장에 편견이 가진 분들도 막상 매장에 방문해 상담을 받아보시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고 괜찮다는 말을 많이 해주세요.

아무래도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나면 용어를 잘 모르거나 소재가 낯설어도 본인이 원하는 조건을 말하기 쉽죠. 고객이 대략적인 설명을 하면 그걸 캐치해서 적절한 소재나 디테일을 잡는 게 테일러 메이드의 일이기도 하고요.”

지연 씨는 잠시 고민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특히 체형 부분은 제가 여성이고, 이 일을 하면서 정말 다양한 고객을 만났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요. 기성복을 입었을 때 어떤 부분에서 불편함을 느꼈을지 파악이 쉽고 맞지 않는 기성복을 입었을 때의 고충을 이해하고 피드백을 드리기가 수월하죠. 옷을 마무리 할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입니다.”

결국 기자도 셔츠를 한 벌 맞추기로 했다. 지연 씨는 능숙하게 줄자를 꺼내 치수를 재고 차트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실제 맞춤 정장에 대한 여성 고객의 반응을 물었다.

“일반적인 직장 여성이라면 맞춤 정장을 입고 출근하는 경우는 거의 없죠. 하지만 여성의 사회 진출이 많아지면서 공식적인 자리에 참석해야 하는 일도 늘었어요. 그런 자리를 위해 정장을 맞추러 오시는 경우가 많아요.


단순히 잘 차려입고, 잘 꾸민 개념이 아니라 ‘제대로 된 옷’을 입으려는 고객이 늘었죠.

최근엔 정말 여성 고객의 비율이 눈에 띄게 증가했고 꾸준히 찾아주세요. 처음엔 가볍게 셔츠로 시작했다가 다음엔 재킷, 바지, 이런 식으로 풀세트를 맞추는게 보통이에요. 코트를 맞추는 경우도 있는데 재미있는 작업입니다.”
 

▲기자는 셔츠 원단을 고르며 자켓, 바지도 맞추게 된다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진=디바인핸즈 전주점>

 

맞춤 정장이 인기를 끄는 이유가 단지 편안함 때문일까 궁금했다.

“좋은 옷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변하고 있습니다. 이름 있는 브랜드의 옷도 좋지만 질이 좋고 거품이 적은 웰-메이드 의류의 장점을 아는 분들이 점점 늘고 있어요.

대표님과 저는 ‘맞춤복은 안 해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해 본 사람은 없다’고 얘기해요. 맞춤복이 주는 편안함과 본인 취향이 그대로 반영된 소재와 디테일에 익숙해지면 헤어나오기 힘들거든요.”

그렇다면 지연 씨가 옷을 맞출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무엇일까.

“앞서 말했듯 여성, 남성 정장 디테일에 차별을 두지 않으려 해요. 특히 라펠홀(칼라에 뚫린 장식 구멍, 배지나 부토니에를 꽂는 용도)이나 재킷 안주머니 같은 부분은 여러 번 체크합니다. 같은 맞춤복이니 성별보단 체형에 더 중점을 둬요. ‘몸에 옷을 맞춘다’가 제가 추구하는 가장 큰 가치예요.

무엇보다 여성 고객을 응대할 땐 고객이 맞춤복을 통해 자신의 몸을 긍정하길 바라게 되는 마음으로 임해요.”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지연 씨의 눈에는 열정이 넘쳤다. 어린 나이에 뛰어든 만큼 부담이 클 텐데, 앞으로의 비전을 물었다.

“사회 곳곳에서 여성이 활약하는 무대가 넓어지고 있어요. 제가 테일러 메이드인 것도 그렇고요. 사회적 위치가 중요시되면서 갖춰야 할 TPO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데, 여성에게 요구되는 미의 기준이 조금 더 관대해졌으면 좋겠어요.

보기에 예쁜 옷보다 기능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옷에 몸을 맞추느라 애쓰지 말고 몸에 옷을 맞추는 게 보편화 되었으면 합니다. 자신이 맡은 일과 정체성을 옷을 통해 더 당당하게 드러냈으면 좋겠어요.

맞춤 정장을 입고 공식 석상에 나오는 여성이 많아지면 그만큼 권위와 야망이 있는 모습을 자주 접할 수 있고 이로 인해 인식 개선이 이뤄질 거라고 봐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런 여성들을 서포트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기자는 검정 원단, 빳빳하되 너무 길지 않은 카라, 손목뼈를 충분히 덮는 기장을 부탁했다. 지연 씨는 검정 원단을 여러 개 보여주며 스판 정도나 색을 자세히 설명해주고 소매 샘플을 보여주며 디테일을 잡아나갔다.

확실히 긴장이 풀리자 원하는 사항을 말하기 쉬웠다. 카라나 소매의 종류 등은 샘플이 준비돼 있었고 소재는 직접 만져볼 수 있었다.

기자는 처음으로 특이하다는 눈빛을 받지 않고 둥근 카라도 없는 셔츠를 맞췄다.

 

작은 것까지 내게 맞춰진 좋은 소재의 옷을 갖는 것, 누군가는 맞춤복을 비싸다고 말하겠지만 겪어보면 충분히 지불할 가치가 있는 경험임을 알게 될 것이다.

 

김혜민 기자 reporter@nex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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