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자] <물속의 골리앗> 실체 없는 희망으로 화두를 던지다

김승직 기자 / 기사승인 : 2020-05-10 13: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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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트뉴스=김승직 기자] 종말은 문학·영상작품 등에서 자주 다뤄지는 소재다. 종말은 언젠가 벌어질 일이지만 언제·어떻게 시작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상상력을 자극한다.

좀비 바이러스가 퍼져 서로를 잡아먹거나, 운석이 지구에 충돌하거나, 핵전쟁이 벌어지는 등 종말은 작품 속에서 사건의 원인이 되거나 서사를 통해 주제의식을 전달하는 등의 역할을 한다.

오늘은 시대상을 종말에 비유하는 작품을 얘기하려 한다. 김애란의 단편소설 <물속의 골리앗>이다.

주인공은 재개발로 강제철거 명령이 내려진 아파트에서 어머니와 둘이 산다. 아버지는 용접공으로 얼마 전 임금체불을 항의하기 위해 크레인 위에서 농성을 벌이다 발을 헛디뎌 죽고 말았다.

아파트엔 주인공 가족 외엔 누구도 살지 않는다. 퇴거 명령이 떨어진 뒤 용역의 등쌀에 못 이겨 모두 떠난 까닭이다. 하지만 주인공 가족은 아버지의 상을 치르기 위해 집을 떠나지 않는다.

그러던 중 장마가 시작되고 물이 불어나 마을 사람 대부분이 대피한다. 하지만 주인공 가족은 집을 떠나지 않고 스스로 고립을 택한다. 아버지의 죽음에 숨겨진 전말을 이 집에서 듣고야 말겠다는 이유에서다. 건설사 직원은 아버지의 사인이 실족사라고 했지만 시신은 물대포를 맞은 듯 흠뻑 젖어 있었다.

또 이 아파트는 아버지가 20년을 일해 구매한 것으로 주인공 가족이 집을 떠나지 않는 것은 아버지의 뜻이기도 했다.

물은 더욱 불어나 모든 길이 잠기고 아파트의 전기·가스·수도 등이 끊긴다.

다행히 집엔 아버지가 좋아했던 문어포·쥐포 등과 땅콩·고구마·쌀 등의 식량이 제법 비축돼 있었고 빗물을 저장해 놓을 그릇·비닐봉지 등도 충분해 주인공 가족은 무리 없이 생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어머니의 당뇨였다. 식량이 있다고는 하나 적절한 영양섭취가 중요한 당뇨 환자가 먹을만한 음식은 아니었다. 결국 인슐린도 바닥나 어머니는 저혈당 쇼크로 사망하게 된다.

비는 계속 내렸다. 물은 이내 주인공이 사는 아파트 3층까지 불어났다. 그는 방문을 뜯어 뗏목을 만들고 어머니의 시신을 테이프로 고정한 뒤 뗏목에 싣고 아파트를 탈출한다.

바깥상황은 더욱 참혹했다. 세상 대부분이 물에 잠겨 교회 첨탑, 빌딩 정도만 간간이 눈에 띌 뿐이었고 구조대나 생존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물은 더욱 불어났다. 뗏목은 더 먼 곳으로 흘러가 주인공의 시야엔 크레인 윗부분만 들어오게 된다.

그러던 중 뗏목이 급류에 떠내려오던 나무와 충돌해 부서지면서 주인공은 어머니의 시신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에 주인공은 근처에 있던 크레인 밑동에 매달려 밤을 보내고, 다음날 스티로폼 조각을 타고 사람이나 식량을 찾아 떠난다.

어느 순간 장마는 끝났지만 크레인 외에 모든 것이 물에 잠겼다. 주인공은 몸을 누일 수 있는 적당한 크기의 크레인을 물색하다가 타워크레인 위에서 체조하고 있는 사람을 발견한다.

주인공은 반가운 마음에 그 크레인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사람은 없고 라면 한 개와 1.5리터짜리 사이다만 놓여있을 뿐이었다.

주인공은 ‘체조하던 사람이 아버지(영혼)였을 것’이라며 아버지가 자신을 이곳으로 이끌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농성 중 몸을 녹이기 위해 크레인 위에서 체조했을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며 눈물 흘린다.

주인공은 라면과 사이다를 먹은 뒤 몸을 녹이기 위해 체조를 시작한다. 그리고 ‘누군가 반드시 찾아올 것’이라고 희망한다. 

 

▲ 비행운 표지 <사진=YES24>


이 소설을 난쟁이가 거인을 쓰러뜨리는 내용인 ‘다윗과 골리앗’과 빗대는 해석이 많다. ‘물속의 골리앗’이라는 제목도 그렇지만 ‘소년이 거대한 재난에 맞서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더 중요한 것은 물과 자본, 자연과 권력이 갖는 유사성이다.

주인공은 계속되는 폭우를 ‘망설임이 없는, 반성도 없고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금치산자’라고 표현한다.

이 소설에서 물은 생활의 필수 요소이자 모든 불행의 시작이다. 이런 물의 특징은 자본과 유사한 점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물대포를 맞아 크레인에서 떨어졌으며 주인공은 홍수 때문에 부모님이 끝까지 지키려 했던 아파트를 떠나야만 했다. 하지만 살기 위해선 물을 마셔야 한다.

아버지가 크레인에 오르고 물대포를 맞은 것은 임금체불 때문이다. 그리고 어차피 가족은 홍수가 아니더라도 언젠가 아파트를 떠나야 했다. 아버지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돈이 필요했고 자산을 지키려다 목숨을 잃었다.

이 소설에서 자본과 물은 차례로 주인공 가족에게 들이닥쳐 분쟁을 만들고 결국 무언가를 포기해야 할 상황을 만든다.

이 둘의 공통점은 자본에 대한 어머니의 분노가 물에 표출되면서 명확해진다. 작중에서 어머니는 주인공에게 “아버지가 죽었는데 무섭지 않냐”며 분노를 표출한다. 그러면서 식수가 담긴 비닐봉지 수십 개를 찢어버린다.

이런 맥락에서 이 서사의 주제는 재난에서 살아남기 위한 소년의 몸부림이 아닌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소년의 몸부림이라 할 수 있다.

이 소설의 마지막 풍경인 황톳빛 물이 잠긴 도시는 현시대의 표상이며 그 와중에 물 밖으로 고개를 세운 크레인은 자본가의 형상이다.

주인공은 아파트에 있을 당시 변기에 오물을 내리면서 물에 잠긴 도시가 얼마나 더러운 것일지 자문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주인공만 살아남은 이유는 뭘까? 바로 아버지에게 배운 수영이다. 물이 곧 자본이라면 수영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다.

특히 주인공이 수영하는 법을 아버지에게 생일선물로 받았다는 점에서에 더욱 의미심장하다.

아버지는 주인공의 생일날 그에게 수영을 가르치며 수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을 두려워하지 않고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주인공은 이때의 물을 아득하고 편안한 것으로 표현한다.

즉 아버지의 죽음은 자본에 저항했기 때문이고 주인공이 살아남은 건 자본의 흐름에 순응했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어머니 역시 살아서 아파트를 떠날 수 있었음에도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듣기 위해 고립되는 것을 택했다. 주인공은 이를 “건설사 직원의 손을 잡지 않은 대가로 어머니는 아파트가 아닌 세상을 떠나게 됐다”고 표현한다. 

▲ 김애란 소설가 <사진=구글이미지>

그렇다면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저자 김애란은 이 소설을 통해 희망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주인공은 전대미문의 재난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고 누군가가 구조해줄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상황이 너무 참담하기에 독자는 은연중에 소년이 죽고 말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런 아이러니에서 오는 괴리감이 독자에게 더 큰 울림을 준다. 책을 덮고 난 뒤에도 소년의 안부를 걱정하게 만드는 것이다.

소설을 구성하는 것이 작가의 힘이라면 그 서사에서 깨달은 바로 주변을 변화시키는 것이 독자의 힘이다.

김애란은 희망의 실체를 밝히지 않고 소설을 끝내면서 독자에게 화두를 던진다.

왜 저런 재난이 생긴 것일까? 소년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소년을 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 소년의 구조요청은 독자를 향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현실에서 주인공과 같은 이를 만들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김승직 기자 reporter@nex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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