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트뉴스 인터뷰] <여성직업인을 만나다> ‘타투이스트’ 아일

김혜민 기자 / 기사승인 : 2020-06-17 14: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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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난 만큼 다양한 직종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만날수 있다.
이들의 일은 어떤지 궁금했다. 여러 여성 직업인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일을 소개한다.
▲소설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제왕의 검 안두릴 <사진=본인 제공>

 

[넥스트뉴스=김혜민 기자] '타투'하면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는지 궁금하다. 사람마다 대답은 다르겠지만 몇 년 만에 타투는 불온의 상징에서 개성 표현의 방법으로 크게 도약했다. 


이번에 만난 여성 직업인은 타투이스트 아일 씨다. 아일 씨를 처음 본 건 작년 봄 SNS에서다. ‘곧 수강을 마무리하고 조금 시간을 가진 뒤 작업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래서 아일 씨의 계정에 올라오는 건 전부 직접 그린 도안이었다.

타투를 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타투이스트의 계정에는 작업물 사진이 많을수록 좋다. 선을 얼마나 잘 따는지, 색을 얼마나 잘 쓰는지, 도안에는 어떤 느낌이 담겨있는지, 어떤 마음으로 작업을 하는지 등 실력을 가늠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기 때문이다. 한번 새기면 평생 가는 만큼 실력이 좋은 사람에게 받고 싶은 건 누구나 마찬가지일테니까.

하지만 아일 씨는 도안만으로 예약 문의가 빗발쳤다. 아직 언제 작업을 시작할지 모른다고 했음에도 우선 예약을 하고 싶다는 문의가 많이 보였다. 아일 씨는 곧 “몇 달 뒤에나 작업할 예정인데 그때까지 기다려 주실 수 있다면 도안 주문제작을 받겠다”고 공지를 올렸다.

아일 씨의 장르는 리얼리즘이다. 스킬과 섬세함이 많이 필요한 만큼 작업물을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 이례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일 씨도 당시 인기를 실감했는지, 부담이 되진 않았는지 물었다.

“그때 주변에 타투이스트가 없었어요. 제 타투 선생님뿐이었고, 동료 제자분들과 친한 것도 아니었거든요. 그냥 ‘사람들이 내 도안에 관심을 보이네’ 하는 생각은 했는데 크게 실감이 나진 않았어요.”

아일 씨의 도안이나 작업물은 ‘저건 종이에 그리기도 힘들 것 같은데’ 싶을 만큼 섬세한 작업이 많았다. 물감으로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리는 일과 피부에 잉크를 새기는 일은 완전히 다른 작업일텐데, 차이점이 궁금했다.

“피부는 데미지를 입잖아요. 종이는 그냥 제가 손 가는 대로 막 그려도 되고 여러 번 덧발라 색을 내도 상관없죠. 그런데 피부는 그렇지가 않아요. 같은 톤이어도 피부에서는 한 번에 색을 내야 하고, 톤이 다양한 경우 희석된 잉크를 여러 개 놓고 단계별로 색을 내요. 프로세스가 다르죠. 도안의 느낌을 피부 위에서 어떻게 살리느냐를 가장 신경 씁니다.”

시작한 지 채 일년이 안 됐지만 아일 씨가 예약 공지를 올리면 일주일 안에 한 달 일정이 모두 찰 정도로 인기가 많다. 하지만 아일 씨는 아직 다른 작업자의 작업을 보면 모르는 게 많다고 느낀다고 했다.


“같이 스튜디오를 쓰는 작업자분들의 스타일이 모두 달라요. 그래서 정말 도움을 많이 받고 있죠. 저와 비슷한 시기에 타투를 시작한 분도 있지만 다들 오래 하셔서 제가 어려워하는 부분이 있으면 많이 도와줘요. 모이면 굉장히 학구적인 분위기가 되기도 하고요.”

아일 씨가 활동하고 있는 노네임스튜디오의 모든 작업자, 그리고 기자가 만난 타투이스트들은 모두 자기 일에 자부심이 있었다.

 

하지만 국내에서 타투는 아직 의료행위다. 지난 1992년 5월 대법원은 이에 대한 판단 근거로 ▲작업자 실수로 사고 가능성 존재 ▲문신용 침의 질병 전염 가능성 등을 들었다.

하지만 타투 시술 시 바늘을 재활용하는 타투이스트는 거의 없다. 대놓고 바늘을 뜯어서 작업을 시작한 뒤 마무리가 되면 구부려 버리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또 작업실에서 쓴 바늘을 모아 둔 통이 흔히 발견되기도 한다.

눈썹과 아이라인 등 반영구 문신은 비의료인도 시술할 수 있지만 타투는 아니다. 많은 타투이스트가 안타까워하는 부분이다. 얼마 전 타투의 법제화를 요구하는 조합인 ‘타투유니온’이 출범했다. 이런 조합이 나타나는 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궁금했다,

“저도 타투유니온의 조합원이에요. 타투가 법제화되는 건 모든 타투이스트가 바라는 일입니다. 하지만 개인이 목소리를 내는 건 큰 힘이 없어요. 그래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단체가 있다는 건 굉장히 긍정적이죠. 타투가 법의 테두리 밖에 있어서 수반되는 위험도 많거든요.”

타투를 나쁘게 보는 사람들은 ‘소득신고를 안 하니 세금도 내지 않는다’고 비난하지만, 아일 씨는 법제화 여부를 장·단점으로 놓고 볼 게 아니라고 말을 이었다.

“안전이나 생존에 관련해 보호받지 못하는 게 많아요. 법제화가 되고 어떤 기준이 세워진다면 좋은데 그런 게 없으니 해외 기준을 따르는 식이에요.”

타투는 이제 양지로 올라온 하나의 문화다. 다만 번번히 일반직업 반열에 들진 못했다. 어떤 스튜디오는 작업 전 ‘타투가 불법이라는 점을 악용해 시술 후 작업자를 협박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동의서에 서명을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게 법적인 효력이 있는 건 아니다. 그걸 알면서도 서명을 받는다는 게 타투이스트들의 현주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안하지 않냐고 묻자 아일 씨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협박을 하면 원하는 대로 다 해 줄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고요. 당장 생업을 잡고 흔드는 거죠.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들었어요. 저는 아직 그런 적이 없지만 앞으로도 없을 거란 보장도 없어요. 그래서 무서울 때도 있죠. 이 일이 언제, 어떻게 끝날지 모르는 거잖아요.”

아일 씨는 타투를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를 위해 타투가 직업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했다. 미성년자에게 타투를 해 주거나 시술 이후 부작용이 나도 나 몰라라 하는 작업자도 있으니 예외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할지, 사고가 난다면 과실을 어떻게 볼지 기준이 필요하다고 했다.

실제로 의사 면허가 없으면 타투 시술이 불법인 곳은 전세계에서 한국밖에 없다. 그럼에도 한국 타투이스트들의 실력은 세계 최고로 인정받고 있다. 아일 씨 역시 5월 미국 게스트위크를 계획했으나 코로나19로 무산됐다. 기대가 컷던 터라 아쉬움도 크다고 했다.

“정말 기대를 많이 했어요. 예약도 다 받고, 스튜디오 사람들이 같이 가는 거라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았거든요. 해외 타투이스트들과 교류도 하고 다양한 시도를 해 볼 기회여서 너무 아쉽죠. 언젠가는 꼭 가고 싶어요.”

아일 씨는 여러 가지 장르를 본인 스타일대로 작업해보고 싶다고 했다. “친구가 딱 키워드만 던져주고 나머지는 마음대로 하라고 해서 제가 원하는 걸 녹여서 작업한 적이 있어요.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고 뿌듯한 작업이었어요. 블랙앤그레이도 재미있고, 명화 작업도 해보고 싶고요.”
 

▲아일 씨가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으로 꼽은 이끼 낀 숲 <사진=본인 제공>

 

또 하고 싶은 일이 있냐고 묻자 아일 씨는 확실하게 답을 하긴 어렵다고 대답했다. “작년 초에는 제가 타투이스트가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어요. 이 일은 저랑 잘 맞아요. 제가 낯가리는 편이 아니라 손님 대하기도 어렵지 않고 보람도 있죠. 그래도 계속 이 일만 하기는 힘들 것 같아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회화 작업을 하려고 작업실도 구하고 있고요. 보람과 자아실현을 동시에 할 수 있어야 무슨 일이든 오래 할 수 있잖아요.”

아일 씨는 전에 입시 미술 강사로 일할 땐 너무 힘들었다며 타투를 비교적 늦은 나이에 시작했지만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미술 강사로 일할 땐 정신적으로 정말 너무 힘들었어요. 타투는 도안을 올릴 때부터 좋아해주는 분들이 계셨고 스튜디오에서도 먼저 같이 작업하자고 연락이 와서 큰 어려움이 없었어요. 그렇다고 해서 더 빨리 시작하지 않은 걸 후회하진 않아요. 지난 시간이 쌓여서 지금의 제가 있는 거니까요.”

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한 이유도 아일 씨의 이야기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작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문의가 올 정도로 바빴지만 불편해 하지 않고 차분한 분위기를 보여준 아일 씨.

실력을 보고 찾아오는 손님도 많겠지만 아일 씨의 분위기를 사랑하는 손님도 적지 않을 것이다. 지나온 시간의 가치를 아는 아일 씨는 평생 남을 그림을 새기는 직업이 참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몸에 무한함을 새기는 일, 모든 타투이스트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일하는 날이 가까이 있길 바란다.

 

김혜민 기자 reporter@nex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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