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호러가이드] <드레스드 투 킬> 고전 스릴러의 '죽여주는' 시퀀스

김혜민 기자 / 기사승인 : 2020-03-28 16: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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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받아 숨기고 있던 취향, 매주 하나씩 <호러 상자>를 열어보자.

 

[넥스트뉴스=김혜민 기자] 많은 사람이 이 영화를 표절이라고 부른다. 세상천지 브라이언 드 팔마가 히치콕을 사랑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기자는 이 영화만큼은 브라이언에게서 히치콕을 떼고 봐 줬으면 한다. 쉽지 않은 일인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브라이언은 히치콕의 시네필이란 말을 무척 싫어한다. 브라이언과 인터뷰를 한다면 절대 히치콕 얘기는 꺼내지 말라는 게 주의사항일 정도로.


그러니까 부디 이번 가이드에서는, 브라이언을 개별적인 스릴러 감독으로 보자. 히치콕의 영화 두 편 정도가 계속해서 당신의 뇌에 떠다닐 테지만 -누가봐도 해당 영화를 오마쥬 한 장면이 많지만 그 영화들도 곧 이야기할 테니- 이번만큼은 '죽여주는' 브라이언의 카메라 워킹과 연출에 집중해주길 바란다.

잠깐 주의사항을 안내하자면, 이 영화는 거의 포르노에 가까운 수위를 유지한다. 천박하기 짝이 없는 여성 캐릭터와 시퀀스로 얼룩져있다. 브라이언이 <시스터즈>와 <캐리>로 얻은 명성이 아니었다면 만들지 못했을 거다. 만들어도 사장됐거나.
 

▲오프닝부터 샤워 장면이다. 면도하는 남편을 보며 흥분하는 케이트. 샤워 전엔 화장을 지우도록 하자.

 


 

중년 케이트는 남편과의 섹스에서 성적 만족을 찾지 못하는 사람이다. 케이트는 상담에서 이런 고민을 털어놓으며 의사 엘리엇에게 묻는다. “제가 성적으로 매력이 있나요? 저랑 자고 싶으세요?” 의사는 답한다. “네. 물론이죠.” 그럼 왜 그렇게 하지 않냐는 질문에 의사는 “전 가정이 있고 아내를 사랑합니다. 이런 일로 가정을 망치고 싶지 않아요”라고 대답한다.
 

▲환자가 "저랑 자고 싶으세요?"라는 질문을 하면 당황스러울 수 밖에.


케이트는 상담을 마치고 미술관에 들른다. 거기서 우연히 옆에 앉은 남자에게 어떤 섹슈얼한 텐션을 느끼고 다리를 꼬고 장갑을 벗는 등 (나름대로 혹은 당시에는 충분했을) 섹스어필을 한다.

 


▲케이트의 섹스어필. 그러나 곧 남성은 자리를 뜨고 케이트는 장갑을 잃어버린다.

 

▲옆에 앉았던 남자는 장갑을 줍고 돌려줄 듯 말 듯, 케이트를 미술관 밖까지 끌어낸다.


떨어뜨린 장갑으로 술래잡기를 하던 케이트와 남성은 결국 택시 안에서 섹스를 하고 함께 남성의 집으로 간다. 다른 남자와 잠자리를 원했던 케이트는 만족하고 방을 나서지만, 엘리베이터 안에서 의문의 여성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한다.

 

▲공공장소에서 이런 짓은 하지 말자. 전혀 섹시하지 않다.

 

▲살인장면을 목격하는 리즈. 엘리베이터 내 거울을 이용한 구도는 상당히 감각적이다.


살인사건의 목격자 리즈는 다른 목격자가 없고, 매춘부이며, 본인과 같은 범인은 금발머리 여성이라고 증언한 것을 미루어 용의자 선상에 오른다. 이어 리즈마저 같은 사람에게 살해당할 뻔 하고 리즈는 케이트의 아들 피터와 범인 잡기에 나선다.

 

▲리즈의 목숨을 구해준 피터.

 

▲남자에서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사람의 인터뷰를 보는 엘리엇과 리즈

 

범인은 엘리엇의 다른 환자, 트랜스젠더 보비. 엘리엇은 보비가 남긴 음성 메시지로 범인임을 확신한다. 하지만 곧장 신고하지는 않는다. 따로 이야기를 하고 싶으니 보비가 수술 동의서에 사인 받기 위해 상담을 받는다는 다른 정신과 의사를 찾아간다. 엘리엇은 같이 사무실에 가 보비에게 연락 해 보자는 의사의 제안을 거절하고 사무실로 돌아온다.

 

▲엘리엇의 사무실을 나서는 범인.

 

그 날 저녁 피터는 엘리엇 상담실 앞에 카메라를 설치해 오가는 모든 사람을 촬영하고 가장 마지막 예약자가 살인범임을 확인한다. 이제 리즈가 누명을 벗기 위해 마지막 환자의 신상을 얻는 일만 남았다. 리즈는 상담을 핑계로 엘리엇의 사무실을 방문한다. 다음은 결말이 포함돼 있으니 역시 읽고 싶은 사람만 계속해서 읽으면 된다.
 

▲번개와 함께 드러나는 실루엣. 리즈는 속옷 차림으로 엘리엇을 도발해 정신을 흩어놓은 뒤 환자 명단을 손에 넣는다.

 

케이트를 죽이고 리즈도 죽이려 한 범인은 보비, 엘리엇의 다른 인격이다. 보비는 여성 인격이고, 엘리엇이 성적으로 자극을 받으면 튀어나온다. 성전환 수술 결정을 앞두고 가장 방해되는 게 남성성을 가진 인격, 엘리엇이기 때문이다.
 

▲살해 도구인 면도날. 이 장면에서 어떤 영화의 무슨 씬을 떠올리는지, 다 알고 있다.


안다, 무슨 영화를 생각하는지. 왜 이 영화가 <싸이코>의 아류라고 불리는지도 알고 있다. 하지만 20년의 간격을 두고 이중인격을 반전 소재로 썼다고 해서 브라이언이 평가 절하될 일은 아니다. 히치콕이 너무 빨랐던 거지, 다중인격은 <아이덴티티>나 <23아이덴티티>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주제다.

 

▲리즈가 "저와 자고 싶지 않으세요?"라고 묻고 잠시 화장을 고치고 오겠다고 하자, 엘리엇은 거울을 들여다 본다.


오히려 찝찝할 정도로 집착적인 롱테이크와 엘리엇이 성적 자극을 느낄 때마다 거울을 확인하는 걸로 끊임없이 힌트를 주고 범죄 장면을 보여주는 앵글 등은 브라이언이 훨씬 훌륭하게 담아냈다. 살해당하는 일장춘몽을 꾸는 케이트와 리즈로 갖춘 수미상관 구조까지, 열린 결말임에도 뒷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드는 연출이다.

 

▲브라이언 드 팔마는 영화에서 거울을 이용해 다양한 연출을 한다.

 

특이한 점은 영화 내 대사가 정말 적다는 거다. 브라이언은 텐션을 표정, 눈빛과 BGM으로 유지한다. 그럼에도 40년이 지난 지금도 지루하다는 느낌이 적다. 게다가 엔딩크레딧을 포함한 총 러닝타임이 정확하게 1:45:00 이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지만, 소재를 생각하면 감독이 노린거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메인소재가 이중인격이기 때문에, 브라이언 드 팔마가 히치콕을 사랑하기 때문에, 살해 장면을 오마주한 씬이 등장하기 때문에 이 영화는 영원히 <싸이코>와 <현기증>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기억해 주길 바란다. 겹치는 건 오직 금발 여성이 죽고, 이중인격 주인공이 등장하는 것 뿐이라는 걸. <싸이코>가 아니었다면 <드레스드 투 킬>은 정말 '죽여주는' 영화라는 평이 아깝지 않았을 거다.

  

여담으로, 사실 이 영화는 지난 주에 소개하려던 영화다. <스크림>은 <드레스드 투 킬> 다음 차례였다. 이 영화는 분명 잘 만들었으나 여성 캐릭터를 소비하는 방식이 너무 성적 자극을 주는데 치중돼 있기 때문에 일찍 소개하고 끝내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합법적으로 볼 수 있는 방법은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와 DVD 뿐이라 늦어졌다.(기자의 영어실력 때문에..)

 

다음 주 토요 호러가이드에서 소개 할 영화는 여자 주인공이 '많이 많이' 해먹는 영화이니, 기대해 주시길.

 

김혜민 기자 reporter@nex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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