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트뉴스 인터뷰] <여성 직업인을 만나다> UI/UX 디자이너 권애실

김혜민 기자 / 기사승인 : 2020-04-22 16:4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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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I/UX 디자이너 권애실 <사진=김혜민 기자>

 

[넥스트뉴스=김혜민 기자] 처음 애실 씨가 인터뷰 권유를 받고 한 말은 “세상에 디자이너가 얼마나 많은데, 왜 굳이 저를 인터뷰해요?”였다. 기자는 “본인 이야기를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데, 애실 씨가 딱 그런 분이라고 해서요”라고 답했다. 애실 씨는 “제 얘기요? 그럼 할 말 많죠”라고 인터뷰에 응했다.

애실 씨는 6년 차 UI/UX 디자이너다. UI는 User Interface, UX는 User Experience로 UI 안에 UX가 포함된다.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구조가 대충 정해져 있어요. 앱 대부분 하단에는 자주 쓰는 메뉴 서너 개 정도가 있고, 오른쪽이나 왼쪽 위에는 줄 세 개가 있잖아요. 그걸 누르면 상세 메뉴가 나오고요. 여기서 최대한 감각적이고 직관적인 화면을 구성하는 게 제 일입니다.”

기자가 꼭 애실 씨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이유가 있다. 애실 씨는 어릴 적 어머니가 디자이너였고, 초등학생 때 취미는 일러스트레이터로 핸드폰을 그리는 거였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부터 단 한 번도 다른 길을 생각해본 적 없다는 게 신기했다.

“엄마가 디자이너니까 집 컴퓨터에는 늘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가 깔려있었어요. 저는 열 살도 되기 전부터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거 말곤 할 줄 아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었거든요.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애실 씨는 고등학교도, 대학교도 디자인과를 나왔다. 어릴 적부터 디자이너를 꿈꿨으니 당연한 진로였다. “저는 디자이너가 제 천직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대학 졸업할 때쯤 교수님이 저한테 그러시더라고요. ‘애실아, 넌 디자인에 재능이 없는 것 같다’”

그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냐고 물었다. “‘뭘 안다고 그런 말을 하지?’ 싶더라고요. 그 교수님이 졸업 전 마지막 방학에 성적 좋은 학생만 뽑아서 포트폴리오 강의를 진행했는데, 전 조건이 안 됐는데 친구를 따라서 참여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그냥 남들 하는 만큼 했는데 재능이 없다는 말에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이 악물고 했어요. 과제보다 더 열심히 했죠.”

애실 씨는 금세 인정받았다. “좀 시간이 지나니까 교수님이 저한테만 다른 리소스를 주더라고요. 특강이 끝나고, 교수님이 운영하던 회사가 제 첫 직장이 됐어요. 교수님이 먼저 같이 일하자고 했거든요. 진짜 짜릿했어요.”
 

▲애실 씨의 포트폴리오 <사진=본인 제공>

 

그때 애실 씨는 사이트를 유지·보수하는 일을 맡았다. “회사를 1년 정도 다녔어요. 퇴사를 결심한 이유가 몇 개 있는데, 우선 사수가 없었어요. 대리님이 있긴 했는데 띠동갑이어서 도저히 뭘 물어볼 수가 없더라고요. 사수라기엔 연차도 너무 차이가 났고요.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재미가 없었어요. 원래 있는 걸 좀 다듬어서 바꾸는 일이었으니까, 창작을 못 하는 환경이잖아요. 그래서 그만뒀어요.”

애실 씨는 디자인과를 졸업했지만, 동기 중 디자이너로 일하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걸 혼자서 해결했는데, 순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효과를 어떻게 내야 하는지, 그런 사소한 걸 물어볼 사람이 없다는 게 제일 힘들었다고 말했다.

애실 씨의 다음 직장은 앱 두어 개, 사이트 한 개 정도를 운영하는 스타트업 회사였다. “막연하게 스타트업에 로망이 있었어요. 사수고 뭐고, 그냥 회사에 디자이너가 저 하나였어요. 전 이게 제가 원하는 디자인을 할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애실 씨는 2년 차가 넘어서야 회사에선 자아실현을 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며 웃었다. 

 

“전 디자인 전공자에 당시 사내 유일한 디자이너였는데도 대표의 입맛에 맞춘 디자인을 했어요. 아마 이런 계통에 종사하는 분들은 다 공감할 거예요. 위에서 수정 사항을 줘서 고치면 고칠수록 결과물이 촌스러워지는 거요. 그래서 완성을 하고 나면 다른 이름으로 저장해두고 수정용 원본은 따로 두거든요.”

애실 씨는 물론 클라이언트 요구에 맞는 디자인을 하는 게 디자이너의 역할이지만, 그 과정에서 감각이 없다거나 이렇게밖에 못하냐는 말을 듣는 게 견디기 힘들었다고 했다.

“그 회사에서는 월급을 100만 원도 못 받았어요. 진짜 열정페이였죠. 신입 디자이너, 아니면 디자이너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인데, 절대 본인 가치를 후려치는 회사엔 들어가지 마세요. 돈도 돈이지만 수정 방향을 제시하면서 본인을 깎아내리는 거 참지 마세요.”

애실 씨가 퇴사하면서 챙겨 나간 건 ‘다른 이름으로 저장’한 파일뿐이라고 했다. 두 번이나 사수가 없는 직장을 다녔으니, 세 번째엔 체계도 잡혀있고 사수도 있는 곳에 입사했다.

“세 번째 직장 얘기를 하기 전에 또 중요한 게 있어요. 우선 이력서를 넣을 때 회사 홈페이지나 구인공고를 보고 디자인이 본인 취향에 맞는 곳에 이력서를 넣으세요. 면접을 보러 갔을 때, 대표와 뜻이 잘 맞더라도 사수 표정이 안 좋으면 거긴 가지 마세요. 대표 마음에 드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사수와 취향이 맞아야 해요. 일은 사수랑 하는 거니까요.”

애실 씨는 진작 알았다면 좋았을 거라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세 번째 회사에서 너무 힘들었고, 직장 고르는 법도, 포트폴리오 만드는 법도 물어볼 곳이 없어 여러모로 고생해서 혹시 비슷한 사람이 있다면 꼭 하고 싶었던 말이라고 했다.

“내가 아무리 잘 해도, 사수 마음에 안 들면 그냥 감각 없는 디자이너가 되는 거예요. 세 번째 회사에서 그랬어요. 거긴 사수가 있었는데, 한 번도 자기 아래로 누굴 들여본 적이 없고 저랑 디자인 취향이 다른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뭘 보여주면 수정 방향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한숨 쉬고 제 작업물을 가져가서 다 갈아 엎어놓는 식이었죠. 자연스럽게 저한테 일을 주질 않더라고요. 내가 디자이너로 입사한 게 맞나 싶었어요.”

애실 씨는 앱 내부 광고 위치를 정하고 SNS 계정을 관리하는 일을 맡았고, 당장 잘려도 아쉽지 않다는 마음으로 직장 생활을 했다며 얘기를 계속했다.

“커피 마시러 밖으로 나가는 사람은 저랑 대표 둘 뿐이었어요. 카페에 앉아서 제 의견을 많이 피력했죠. 광고를 어디에 넣으면 좋을 것 같다, 그런 얘기요. 대표는 절 좋아했어요. 광고 수익을 잘 뽑았거든요. 하지만 디자인 일은 여전히 못 받았어요. 디자인 일을 하고 싶다고, 일 좀 달라니까 대표가 그러더라고요. ‘네 사수는 가정이 있잖아. 나이도 많고. 일거리 뺏는 건 좀 그래.’ 그때 아, 절대로 내 차례라는 건 없구나 싶었어요.”

하지만 의외로 금방 디자인 전반을 맡을 기회가 생겼다.

“쇼핑몰을 만든다고 외부에서 실장을 데려왔는데, 그 실장님이 쇼핑몰 로고를 블라인드 테스트로 뽑는다고 했거든요. 이걸 놓치면 여기선 디자이너로 일 할 날은 오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애실 씨는 디자인 일을 하며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 중 하나가 ‘버리는 카드는 만들지 말 자’라고 했다.

 

“디자인을 3안까지 만들면 하나는 나를 갈아 넣은 거, 하나는 크게 힘 안 들이고 제작한 거, 하나는 버리는 거. 그때 제 사수가 이걸 팁이라고 알려줬어요. 윗사람들한테 선택권을 주는 기분이 들게 하라고요. 전 죽어도 그런 짓은 하기 싫었어요. 돈 받고 일하는데, 버리는 디자인이 있느니 후보를 줄이더라도 완성도가 높은 게 더 중요했어요. 그때 제가 제출한 디자인은 하나였고, 그게 뽑혔어요. 대표랑 사수 표정을 보는데, 정말 기분이 이상하더라고요.”

애실 씨는 그때 ‘진짜 악바리같이 굴어야겠다, 나를 인정해주지 않으면 어떻게 해서든 내 실력을 증명해야 하는구나, 그래야 살아남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그 사이트 디자인을 지휘한 다음, 실장님이 절 불러다 계속 SNS랑 광고 페이지 관리를 하라고 했어요. 아까 말했지만, 광고 수익이 꽤 잘 나왔거든요. 하지만 전 디자이너잖아요. ‘저는 이 회사에 디자이너로 입사했고, 맡은 일을 하고 싶습니다’고 하니 ‘너한테 거부할 권리는 없으니까 안 할 거면 나가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대로 짐 싸서 나갔어요. 너무 허무하더라고요. 겨우 기회를 잡았는데 하루 만에 잘렸다는 게요.”

하지만 4년 차가 되니 애실 씨를 메인 디자이너로 와달라고 부르는 곳이 많았고, 회사 보는 눈도 생겨서 네 번째 직장은 만족스러웠다며 말을 이었다.

“기획팀, 디자인팀, 개발팀이 있는 회사였어요. 사수도 저를 존중했고요. 체계나, 이미지 소스가 있는 회사를 처음 다녔어요. 기획자가 기획서를 넘기면 그걸 토대로 디자인하고, 거기에 제 취향도 녹이고, 그걸 개발팀에 넘겨서 구현이 불가한 부분은 수정하고. 아, 진짜 내가 디자이너구나 싶더라고요.”

네 번째 회사 사수는 어떻게 달랐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고 했다.

“사수가 차장님이었는데, 시안을 보여주면 저한테 ‘이 부분은 어떤 식으로 바꾸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떠니’라고 물어보면서 가닥을 잡았어요. 제가 ‘여기는 무슨 이유로 이렇게 했고, 어디는 말씀하신 대로 수정하겠습니다’ 하면 ‘그럼 그렇게 진행하자’ 이런 식이었죠. 제 디자인을 존중해주는 게 정말 큰 힘이 됐어요. 기획자가 있어서 일이 체계적으로 진행되니까, 전 디자인만 하면 됐거든요.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애실 씨는 6년 차지만 아직도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게 가장 힘들고 오래 걸리는 일이라고 했다.
 

▲오닉스 코리아 모바일 페이지 <사진=본인 제공>

 

“포트폴리오에선 제 자아실현이 가능하잖아요. 물론 6년 차니까 이제 회사에서 뭘 시킬지 알아요. 그런 거 할 줄 안다고 보여주고, 제가 하고 싶은 걸 같이 보여주니까 회사에서도 맞는지 안 맞는지 판단이 서죠.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있으면 너무 힘든데, 너무 재밌고 신나요. 그럴 때 느끼죠. 나는 평생 디자이너를 하겠구나.”

하지만 디자이너는 수명이 그리 긴 직업이 아니다. 애실 씨에게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맞아요. 수명이 그리 길지 않아요. 대리급은 없어서 못 구한다고 하지만 그 이상 직급이 올라가면 슬슬 감각이 떨어진다거나 나이가 너무 많다거나 하는 이유로 일 구하기가 쉽지 않아요. 엄마도 그런 경우였어요. 엄마가 당시 다니던 회사 대표보다 나이가 많았는데, 그걸 부담스럽게 여기더라고요.”

애실 씨는 5년 차에 접어들면서 같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일러스트레이터나 포토샵 강사 제안을 받은 적도 많은데, 제가 가르치는 걸 못해요. 다 저 혼자 익힌 거라 왜 못하는지, 어디가 이해가 안 되는지 파악이 힘들고 설명하기도 힘들어요. 그냥 이렇게, 이렇게 하면 된다고 보여주는 게 편해서 강사는 도저히 못 할 것 같아요.”

게다가 애실 씨는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고, 가정이 있는 사람과 같은 자리를 두고 경쟁을 하면 자신이 불리하다는 걸 알고 있다고 했다.

“전 저 혼자만 책임지면 되지만 가정이 있는 사람은 딸린 식구를 책임져야 하고, 솔직히 제가 결혼 안 한다고 해도 회사에선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전 아직 제가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요새 디자이너들은 정말 잘하거든요. 그 사람들이 낸 결과물을 보면 자연스럽게 더 열심히 해야겠단 생각이 들어요. 평생 디자이너 일을 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회사를 차리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겠죠.”

애실 씨는 “전 이상한 회사도 많이 겪었고, 제 능력을 인정받는 데 너무 오래 걸렸어요. 그래서 회사를 차리면 신입 디자이너에게 ‘일다운 일’을 할 기회를 주고 싶어요. 포트폴리오 만드는 방법도 알려주고, 사소한 거라도 모르는 건 편하게 물어보고, 본인 능력을 존중받으면서 일 할 기회요.”

왜 그런 분위기를 가진 회사를 운영하고 싶은지 궁금했다.

“아마 그런 회사를 운영하면 전 힘들겠죠. 제 눈에 차지 않는 시안도 많을 거고요. 그런데 제가 사회에 처음 내던져졌을 때를 떠올리면, 내가 이만큼 디자인을 사랑하니까 그 바닥에서 버틸 수 있었구나 싶어요. 그러니까 막 사회에 발을 들인 디자이너가 포기하지 않고, 일을 더 사랑할 수 있게 만들어 주고 싶어요.”

애실 씨는 너무 비현실적인 꿈인 것 같긴 하다고 웃으며 말했지만, 기자는 사회에 나가서 존중받는 경험을 하는 건 정말로 값진 일이라고 대답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애실 씨는 기자에게 포트폴리오를 보여줬다. 비전공자에게 받는 피드백이 유저 편의성을 높이는 데 가장 좋다는 이유였다. 30장에 이르는 PDF 파일을 보고 기자는 잘했는데요? 라고 대답했다. 애실 씨는 “좀 더 구체적인 피드백은 없을까요?”라고 재차 물었지만 정말 잘했다는 것 외엔 할 말이 없었다.

기자는 경력도 있고 따로 이력서를 넣지 않아도 같이 일하자는 연락이 오는데도 조바심을 느끼냐고 물었다. 애실 씨는 단박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남들이 잘했다고 해도, 더 잘하고 싶어요. 제가 만족할 수 있는 만큼요. 아마 평생 디자인 일을 해도 나중에 작업물을 살펴보고 이건 진짜 잘했다 싶은 건 몇 개 안 되겠지만요.”

어설플 때 했던 결과물을 돌아보고 창피해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만, 계속해서 잘하고 싶다는 욕심은 일에 대한 애정에서 나온다.

20년 가까이 디자인 외에 다른 길을 생각해 본 적도 없다는 애실 씨를 보며 조언 구할 사람 한 명 없이 혼자서 6년을 한 업계에서 버티는 일도 쉬운 게 아닌데, ‘신입 디자이너에게 좋은 발판을 마련해 주는 것’이 목표라고 말하는 애실 씨가 새삼 대단해 보였다.

언젠가 애실 씨와 처음 일을 시작한 디자이너가 ‘첫 회사가 좋았던 덕분에 계속 디자인 일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기자에게 들려줄 날이 올 수도 있다고 기대해 본다.

 

김혜민 기자 reporter@nex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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