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언론인의 사명은 어디로 갔나

이주현 기자 / 기사승인 : 2019-09-19 17:3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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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성연쇄살인'의 7차 사건 당시의 용의자 몽타주 수배 전단. <사진=연합뉴스>


[넥스트뉴스=이주현 기자] 1980년대 한국을 충격과 경악으로 몰아넣었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확인됐다.


이 사건은 1986년부터 경기도 화성군(현 경기 화성시) 일대에서 10차례 벌어진 여성 대상 강간·살인사건을 말한다. 당시 범인의 DNA가 현장에 남아 있었으나, 분석 기술이 지금처럼 발전해 있지 않아 DNA 분석이 어려웠다. 하지만 DNA 분석 기술의 발전과 악착같은 수사진의 노력으로 마지막 사건이 있은 지 20여 년 만에 용의자를 확인하게 됐다. 이 용의자는 그동안 교도소에 20년 넘게 수감 중인 50대 남성으로 밝혀졌다. 마지막 사건을 저지른 뒤인 1994년에 또다시 강간 및 살인을 저질러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것.


범죄가 벌어진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완전범죄는 없다는 측면에서 모처럼 경찰이 국민에게 알린 쾌거다.


하지만 이 와중에 몇몇 언론사는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 교도소에서는 1급 모범수’라는 제하의 기사를 쏟아내며 ‘무엇이 중요한가’에 대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물론 이런 상황이 낯선 풍경은 아니다. 그동안 범죄자, 특히 성범죄를 저지른 남성 범죄자를 두고 “그는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는 식의 변명을 수없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5년간 10번의 연쇄살인을 저지르고, 그 이후에도 강간살인죄를 저질러 20년이 넘게 복역하고 있는 범죄자가 그동안 한 차례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는 사실이 도대체 왜 중요한 것일까.

다수의 언론에 의해 특종인양 인용되고 있는 “(용의자가)조용한 성격이라 희대의 범죄자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말은 남들에게 보이는 모습만으로 범죄 가능성을 논하면 안 된다는 의도로 써야 한다. “무기징역이 아니었으면 가석방됐을 것”이라는 말은 차라리 이제라도 범죄자의 악행이 드러나 다행이라는 의도로 써야 합당하다.

언론이라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있는 사실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언제나 중립인 것은 아니다. 그것이 가해자를 두둔하는 도구가 된다면 더욱 문제다. 설사 누군가가 가해자에 대한 변명 등을 늘어놓더라도, 진정한 언론이라면 한 치의 비판도 없이 그대로 보도하는 것에 대한 진정한 성찰이 필요하다.

물론 그는 아직까지 그저 용의자일 뿐이다. 하지만 현재 혐의를 받는 역대급 연쇄살인사건 외에도 또 다른 강간살인죄로 20년이 넘게 복역하고 있는 잔혹한 범죄자이기도 하다. 이런 자를 두고 언론이 ‘모범 수감수’ 같은 단어를 꺼내드는 것은 이미 고인이 된 여러 피해자와 그들의 가족에 대한 모욕이자, 상황을 엄중히 지켜보는 국민에 대한 모독이다.

수십 년 전 참혹하게 벌어진 희대의 연쇄살인의 용의자가 2019년에 특정됐다. 공소시효가 종료돼 법적 처분은 어렵지만, 우리사회에 분명 희망적인 사건이다. 이번 쾌거는 진일보하게 발전한 DNA분석기술에 기반했다. 우리 언론도 과거의 행태를 버리고 DNA분석기술의 발전처럼 획기적으로 진보할 길은 없는가.

 

이주현 기자 reporter@next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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