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

이주현 기자 / 기사승인 : 2019-06-07 17:3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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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 리뷰

▲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넥스트뉴스=이주현 기자] 꾸준하다. 이렇게까지 꾸준해도 되나 싶을 정도다. <괴물>(2006), <설국열차>(2009), <옥자>(2017)에 이어 <기생충>(2019)에서도 봉준호는 관객들을 괴롭힌다. 계급 간의 차이를 명징하게 그려내는 직설적인 표현과 잔인한 장면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언제나 허탈이 남는다. <기생충>은 그 허탈의 정점에 있는 영화다.


봉준호의 영화에서 그의 전작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괴물>은 그의 영화에 특히 자주 등장한다. <옥자>에서 미란도 그룹 CEO였던 낸시가 호수에 독극물을 부었다는 구체적인 이야기는 주한미군의 독극물 방류가 원인이었던 <괴물>의 탄생 비화를 떠오르게 한다. 또 기택의 집으로 쏟아지는 소독 가스는 괴물에게 쏟아지던 방역 가스를, 저택을 탈출해 폭우 속을 달리는 기택 가족은 괴물을 찾기 위해 한강 둔치를 수색하던 강두 가족을 떠오르게 한다. 무엇보다 저택의 지하는 ‘괴물’의 뱃속 혹은 ‘현서’가 갇혀 있던 깊고 컴컴한 하수구를 연상시킨다.


<괴물>에서 현서는 괴물에게 납치당해 하수구에 갇힌다. 강두는 현서가 살아있을 거라 믿고 가족과 함께 추적에 나선다. 그들은 현서를 구출하는 것에 성공한다. 이미 죽은 딸을 꺼내는 것을 두고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뱃속에서 ‘꺼내는’ 행위 자체에는 성공한다. <괴물>의 영어 제목은 , ‘숙주’다. 숙주의 뱃속에서 딸을 꺼내 들었던 아버지는 13년이 지난 지금은 기생충이 되어 괴물 같은 저택 지하로 들어간다. 이제 그를 꺼내려 하는 것은 기택의 아들, 기우다.


기우는 네 명의 가족 중 유일하게 상상할 줄 아는 사람이다. 네 번이나 떨어진 대학 시험에 붙을 수 있다고 상상하고, 신분을 속인 채 부잣집 딸과 결혼할 수 있다고 상상한다. 빈 저택에서 시간을 보내다 ‘여기 살면 어떨 것 같냐’는 질문에 답을 떠올리며 황홀한 표정을 짓는 이도 오직 기우뿐이다. 몇 번이나 ‘상징적이네요’를 되풀이하던 그는 모든 사건을 겪고 뇌수술을 마친 후에야 ‘본질적인 문제’는 돈임을 깨닫는다. 많은 돈을 벌어 저택을 사고 아버지를 지하에서 꺼내겠다고 다짐하지만, 관객은 기택을 구해내려는 기우의 계획이 실패할 것임을 직감한다. 영화 내에서 반복되던 ‘계획’과 ‘무계획’에 대한 이야기 때문만이 아니다. 이 시대에서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계급 상승을 꿈꿀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기택의 상상이 실패로 끝날 것을 암시하며 종결된다.


괴물은 죽었고 설국열차는 부서졌고 옥자는 돌아왔으며 기생충은 죽거나 살아남았다. 그러나 괴물은 또다시 탄생할 수 있고, 미란도 그룹은 망하지 않았다. 가장 적극적인 혁명을 보인 <설국열차>마저도 기존의 통제 체계 외의 다른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는 못했다. 저택에서의 살인 후 홀연히 사라진 기택은 “이렇게도 살아지나”라고 물었던 바로 그곳에서 다시 등장한다. 사라지는 것과 살아지는 것이 단순한 말장난을 벗어나는 순간 우리는 비극의 순환을 목격하게 된다. 봉 감독이 남기는 허탈은 바로 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음’에 있다.


<기생충>은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아무것도 달라질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다송이 근세의 구조 요청을 해석했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기우가 기택의 편지를 해석했어도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괴물을 비롯해 설국열차와 옥자, 기생충은 모두 신자유주의의 산물이지만, 이 적극적인 ‘달라질 수 없음’ 앞에서 <기생충>을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읽으려는 시도는 실패한다. 관객들이 봉준호의 메시지를 읽었음에도 ‘찝찝하고 불쾌하다’는 감정에 머물게 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숙주에서 시작해 기생충까지 13여 년간의 여정을 떠올리며, 우리는 <기생충>을 ‘어찌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지배하는 현시대에 대한 방증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참으로 시의적절”한 영화다. 

 

이주현 기자 reporter@next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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