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리뷰] 연극 <위대한 놀이> - 극단 하땅세

김혜민 기자 / 기사승인 : 2020-06-24 17:4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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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트뉴스=김혜민 기자] 2017년 한국평론가협회 ‘올해의 연극 베스트 3’, 한국연극협회 ‘한국연극 베스트 7’ 선정, 제10회 대한민국연극대상 대상 수상, 제53회 동아연극상 신인연기상 수상. 연극 <위대한 놀이>가 처음 선보인 해에 세운 기록이다. 화려한 이력이 돋보이는 <위대한 놀이>가 다시 무대에 올랐다.

극단 하땅세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소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중 1부를 바탕으로 만든 <위대한 놀이>. 어떤 점이 그렇게 특별한지, 건조하고 잔혹한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어떻게 표현할까 궁금했다.

1부에 등장하는 인물은 그 누구도 이름이나 국적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저 전쟁 중 생존을 위해 다양한 걸 익히는 쌍둥이와 인간이 가진 징그러운 욕망의 끝을 보여준다. 주인공인 쌍둥이들은 감정이 있나 싶을 정도로 딱딱한 캐릭터다.

 

▲배우들이 등장하기 전, 세팅이 끝난 무대 <사진=김혜민 기자>


무대에는 오브제가 거의 없다. 사각 프레임과 전구가 달린 책상 네 개가 전부다. 원작도, 무대도 메마른 느낌이다. 무슨 재미가 있을까 싶지만 <파리대왕>, <파우스트I, II>등의 연출과 무대미술을 맡은 윤시중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는 독창적인 방법으로 까만 무대 위에서 <위대한 놀이>를 펼친다.

우선 배우들은 마스킹 테이프를 들고 나타난다. 즉석에서 무대를 긋고 장소를 만든다. 현대 무용이 떠오르는 신체 연기는 극에 즉각적으로 생동감을 부여한다.


윤 교수는 “연극 제작의 기본이 뭘까 생각했어요. 연습할 때 마스킹부터 하고 시작하거든요. 거기서부터 시작했어요”라고 연출 의도를 설명했다.

 

▲무대미술과 연출을 담당한 윤시중 교수 <사진=김혜민 기자>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작품이 출판되지 못하더라도 계속 쓸 것이다. 쓰지 않으면 살아 있을 이유가 없다‘고 해요. 그건 저도 마찬가지예요. 무대에 올리지 못해도, 보러오는 관객이 없어도 계속 연극을 만들 거예요. 작가에게 글을 쓰는 게 숙명이라면 제겐 연극을 만드는 게 천명입니다.”

 

연극 이름을 <위대한 놀이>라고 붙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라고 했다. “'연극은 위대한가?'란 질문에서 시작했어요. 세상이 어떻든 끝까지 저희가 할 수 있는 걸 하기로 했어요. 그게 연극이고, 연극은 노는 겁니다. 그래서 이 작품을 <위대한 놀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원작의 쌍둥이는 소시오패스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지만 <위대한 놀이>의 쌍둥이는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윤 교수는 “관객이 쌍둥이에게 호감을 느끼고, 쌍둥이 편이 돼야 한다고 봤어요. 그래서 원작과는 다른 설정을 넣었습니다.”

그렇다면 쌍둥이를 맡은 배우들은 원작과 다른 캐릭터를 어떻게 해석했을지 궁금했다. 문숙경 배우는 “쌍둥이가 극을 이끄는 주인공이잖아요. 그런데 너무 무미건조하니까 극에 어울리지 않더라고요. 다른 세상에 있는 느낌이 들어서 생동감을 올리기 위한 거였어요”라고 답했다. 

 

▲이수현 배우와 문숙경 배우 <사진=김혜민 기자>

 

극 중 신체 연기가 돋보였다고 했는데, 실제로 이수현 배우의 팔에는 멍이 선명했다. 신체 연기 역시 극에 생동감을 부여하기 위한 장치인데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진행했던 연극이 대부분 이 정도 퍼포먼스를 동반해서 익숙해요. 몸을 쓰면서 연기하는 게 재밌기도 하고요. 연극에서 다른 배우들과 뛰고 소리 지르는 장면은 생동감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전쟁의 이질적인 모습을 표현하기 위함이기도 해요. 어떻게 그 참상을 드러낼지 많이 고민했어요.”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1부는 짧은 에피소드 여러 개로 구성돼 있다. 극단 하땅세는 그 모든 장면을 무대에 올려 읽기에 재미있는 것과 연극으로 표현했을 때 의미있는 장면을 골랐다고 했다.

배우들에게 어떤 에피소드를 좋아하는지 물었다. 이수현 배우는 원작에서 장님과 귀머거리가 되는 연습을 하는 장면을 꼽았다. “읽을 때는 참 재미있었어요. 살아남기 위한 연습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무대에 올리니까 큰 감흥이 없더라고요.”

연극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는 두 배우 모두 같은 장면을 꼽았다. 쌍둥이가 엄마의 죽음을 목격하는 장면이다. 문숙경 배우는 “다시, 다시, 다시. 쌍둥이는 엄마를 구하기 위해 세 번 같은 때로 돌아가지만 결국 엄마를 구하지 못해요. 극 중 쌍둥이가 뭔가를 배우고, 작문노트를 쓰는 장면이 많이 올라갔는데 그 에피소드에서 쌍둥이는 가장 중요한 걸 배우죠. 죽음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문제라는 거요.”


▲엄마의 죽음. <사진=김혜민 기자>

 

윤 교수는 쌍둥이가 보는 걸 그대로 흡수하는 존재라고 표현했다. “쌍둥이는 전쟁 중에도 배움을 멈추지 않죠. 보고 익힌 걸 실현하는 능력도 뛰어나고요. 그러면서도 전쟁 중이니 그 참상을 드러내는 캐릭터이길 바랐습니다.”


▲악사 역으로 출연하는 서상권 음악 감독 겸 코치 <사진=김혜민 기자>

 

하지만 이것 때문에 극단의 다른 코치와 마찰이 있었다고 했다. “서상권 감독님은 극단에서 정말 중요한 분이에요. 여기에선 악사로 등장하지만, 배우들 연기도 봐 주시고 음악감독 겸 보이스 코치를 맡고 계시기도 합니다. 서 감독님은 배우들이 항상 맑기를 원하세요. 그래서 저랑 의견이 부딪힐 때가 많아요. 전 전쟁 중에 어떻게 사람이 맑을 수 있냐, 좀 거짓말도 하고 치사하게 굴고 그런 모습이 보고 싶은데 서 감독님은 음악도, 연기도 맑은 걸 지향하시거든요.”

<위대한 놀이> 무대 구석에서 아코디언을 연주하던 서 감독이 생각났다. 확실히 윤 교수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기자는 전쟁 중에 사람이 맑은 영혼을 가지고 있을 순 없다고 대답했다. 윤 교수는 “드디어 제 편이 생겼네요. 이렇게 힘들어요, 의견 맞는 사람 찾기가”라며 웃었다.

하지만 의견이 충돌한다고 해서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실제로 극단 하땅세는 <위대한 놀이>를 만들기 위해 600쪽에 달하는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의 모든 장면을 재구성해 리허설을 거쳤고 소설처럼 쌍둥이를 모두 남자 배우로 캐스팅하기도 하고 여자 배우와 남자 배우 한 명씩 쌍둥이 역을 맡기는 등 다양한 시도를 했다. 기자가 정말로 그 과정을 다 거쳤냐고 묻자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윤 교수는 “남자 배우만 둘을 올리니까 극이 너무 건조해지더라고요. 사실 처음엔 원작에 많이 기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면 할수록 욕심이 나더라고요. 이 극을 우리 걸로 만들자는 욕심이 커져서 다양한 시도를 했어요. 쌍둥이 역을 남자 배우에게 맡기니 영 호감이 생기질 않더라고요”라고 말했다.

문숙경 배우는 “여자 배우 한 명, 남자 배우 한 명을 세웠을 때는 극이나 배우들 사이에선 그런 텐션이 전혀 없어도 관객들은 좀 로맨틱한 느낌을 받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여자 배우 두명이 쌍둥이 역을 맡았어요”는 설명을 덧붙였다.

아무리 각색했다지만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에 어떻게 ’놀이‘란 이름을 붙일까, 싶었는데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이 과정을 ’놀이‘라고 여기는 극단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극단 하땅세의 색으로 새롭게 작품을 칠하고 구성한 여정을 듣고 나니 윤 교수가 처음 던진 질문이 떠올랐다.

연극은 위대한가? 배우 몸에 남은 멍과 장편 소설의 모든 에피소드를 재구성한 노력, 누가 그 과정을 위대하지 않다고 말하겠는가. 연극은 위대하고, 극단 하땅세는 이 과정을 언제까지고 즐기며 계속해 나갈 것이다. 윤 교수가 다시 묻는다면 기자는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극단 하땅세의 연극은 위대하다고 대답할 것이다.

 

김혜민 기자 enam.her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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