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자] <카스테라>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일상의 생경함

김승직 기자 / 기사승인 : 2020-04-26 19: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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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트뉴스=김승직 기자] 우리가 당연하게 누려왔던 일상이 누군가의 투쟁이나 희생으로 인한 것이라 생각한 적이 있는가?

오늘은 이런 사유에서 시작된 소설을 소개해볼까 한다. 박민규의 단편소설 <카스테라>다.

이 소설은 집에 있는 냉장고가 엄청난 소음을 일으켜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과정을 담고 있다.

주인공이 새로 구매한 냉장고는 첫날부터 엄청난 소음을 내뿜으며 주인공을 괴롭히고 이에 주인공은 이 냉장고가 전생에 훌리건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이 훌리건이 과격한 응원과정에서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자 신이 ‘너는 성질을 죽일 필요가 있겠다’ 싶어 냉장고로 환생시킨 것이라고 말이다.

주인공은 냉장고를 교환하려 했지만, 전파상이 문을 열지 않아 실패하고 수리기사를 4번이나 불렀음에도 소음의 원인을 찾지 못한다.

이에 주인공은 스스로 냉장고를 수리하기 위해 냉장고의 구조와 냉장의 역사를 공부한다. 뜻밖에 그는 냉장의 목적이 부패와의 투쟁이라는 걸 깨닫고 크게 감화했다. 

결국 그는 냉장고를 존중해줄 가치가 있는 인격체로 인정한다. 소음을 자기주장으로 받아들이며 골칫거리가 아닌 가구의 구성원으로 여기게 된다.

냉장고 소음은 여전했지만, 주인공은 이를 불만으로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간 냉장의 위대함과 고마움을 깨닫지 못했던 자신을 질책하고 냉장고를 보다 가치 있게 쓰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하게 된다.

이에 주인공은 냉장고에 의미 있는 문학·영화작품이나 본인에게 소중한 것을 넣어 보존하는 한편, 해악을 끼치는 것을 함께 넣어 세상으로부터 격리한다. 

 

▲ 박민규 소설 카스테라 <사진=예스24>

 

주인공은 걸리버 여행기를 시작으로 명작으로 꼽히는 문학·영화작품들을 냉장고에 넣기 시작한다. 

 

결국 그는 빚을 진 아버지와 잔소리하는 어머니까지 냉장고에 집어넣고 만다. 

 

여기까지 보면 이 소설은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존속살인을 저지르는 스릴러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냉장고는 단순한 냉장고가 아닌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을 여는 도구를 의미한다.

냉장고에 들어간 아버지는 주인공이 넣어둔 책을 읽고 감탄하기도 하고 사람에게 맞는 냉장온도를 주인공과 토론하는 등 그 안에서 잘 살아가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또 이 소설에선 냉장고에 넣을 대상을 제한하지 않는다. 그 무엇이든 냉장고 문을 열고, 넣고, 문을 닫으면 그만이다.

주인공은 미국, 중국을 냉장고에 집어넣어 그 안을 국제사회로 만든다. 이 두 국가가 지구에 해악을 끼친다는 이유에서다.

주인공은 물건·사람은 물론 국가까지 냉장고에 집어넣는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도 태연하게 일상을 보낸다.

그러던 중 20세기가 끝난 날인 2001년 1월 1일 냉장고가 돌연 조용해진다. 이에 주인공은 그 안에 있는 부모님과 미국·중국 등의 안부를 걱정하며 냉장고 문을 연다.

냉장고 안에 있던 것들은 합쳐져 카스테라로 변해있었다. 주인공은 이를 의아해하면서도 카스테라를 베어 물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린다.

이 소설에선 비상식적인 설정이나 행동이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그에 대한 근거가 빈약해 이를 읽은 뒤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독자가 많다.

그리고 냉장고 안에 들어간 것이 합쳐진 결과가 왜 카스테라인지 반문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평론가 신수정은 카스테라가 딱딱해 보이는 직사각형의 모습이지만 부드럽고 쉽게 녹는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즉 카스테라야말로 어딘가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사람에게 일용할 양식을 제공하는 이상적인 물건인 셈이다.

또 주인공의 사유를 통해 이 소설이 갖고 있는 억지스러운 부분이 합리화 되기 때문에 <카스테라>는 시적 서사를 내포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카스테라>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이 소설이 일관하는 비상식이 비일상감을 부여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

주인공은 이 소설에서 냉장의 위대함에 대해 “냉장고 보급은 인류의 삶을 크게 바꿔놓았다. 가장 획기적인 성과 중 하나는 식중독·암 등 질병 발생률을 대폭 낮춘 것”이라고 설명한다. 

또 “냉장고를 통해 인류는 부패와의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말하며 자신을 위해 힘쓰는 냉장고의 노고에 감사한다.

▲ 소설가 박민규 <사진=구글이미지>

저자 박민규는 자신의 소설에서 화자를 통해 외로움의 감정을 주로 전달한다. <카스테라>의 주인공 역시 자취생으로, 냉장고를 인격체로 대하기 전까진 극심한 외로움에 시달렸다.

지난해 통계에 따르면 전체 가구의 30%가 1인 가구라고 한다. 더욱이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많은 이가 홀로 외로움을 곱씹고 있을 것이다.

어차피 집 밖에 나가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없다면 이를 그리워하기보다 집 안에 있는 사물이나 스스로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

의외의 구석에서 튀어나오는 생경함을 느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하다.

 

김승직 기자 reporter@nex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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