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자] <좀머 씨 이야기> 미지의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김승직 기자 / 기사승인 : 2020-03-28 19:4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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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트뉴스=김승직 기자] 기자는 죽음이 인간을 가장 창의적으로 만든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계속해서 회자되는 명작은 죽음을 다루고 있는 경우가 많고 죽음을 주제로 하지 않더라도 서사를 구성할 때 필수적인 장치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죽음은 해결할 수 없는 삶의 근원적인 공포이고 미지의 영역이며, 이는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변하지 않는다.

기자는 인간은 미지의 영역으로 인한 공백을 상상력으로 메꾸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 증거로 어린 시절의 상상력이 어른이 되면서 점점 사라지는 것은 세상에 대한 지식이 늘어나며 미지의 영역이 줄어들기 때문이 아닌가?

즉 상상력이 미지의 영역을 현실로 끌어오는 힘이라면 죽음이야말로 상상력을 가장 강하게 자극하는 존재인 것이다. (죽음은 삶의 마감기한이나 다름없으니 시험전날 벼락치기를 하듯 엄청난 효율을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오늘은 죽음만큼이나 베일에 둘러싸여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남자의 얘기를 해볼까 한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 씨 이야기>다. 

 

▲ 좀머 씨 이야기 <사진=리디북스>

 

주인공인 소년이 사는 호숫가 마을엔 '좀머'라는 독특한 남자가 있다. 이 남자는 페인트공의 집에 세 들어 살면서 일은 하지 않고 하루 종일 가방과 지팡이만 가지고 마을이나 산 어귀를 쏘다닌다.


덕분에 그의 아내가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으며 마을 사람 누구도 그의 이상행동의 이유를 알지 못한다.

다만 그가 극심한 밀폐공포증 환자이며 집에 있는 것을 참지 못해 하루 종일 걸어 다닌다고 추측할 뿐이다.

주인공은 아버지와 경마장에 들렀다 돌아오는 길에 좀머 씨를 처음 만나게 되는데, 당시 악천후가 계속되고 있어 그의 아버지는 “이러다 죽는다”며 좀머 씨에게 차에 탈것을 권유하지만 그는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라고 말하며 떠나버린다.

주인공이 두 번째로 좀머 씨를 보게 된 것은 자살을 결심했을 때다.

그는 짝사랑하는 소녀와의 약속이 무산되고 피아노 선생님에게 심하게 혼나는 등의 일이 반복되자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슬픔을 주체하지 못해 나무에서 뛰어내려 죽을 결심을 하게 된다.

하지만 나무에 매달린 주인공이 손을 놓으려는 찰나, 어디론가 걸어가는 좀머 씨를 발견한 그는 잠시 행동을 멈춘다.

좀머 씨는 주인공이 매달려 있는 나무 아래서 신음하듯 한숨을 내뱉고 빵과 물을 순식간에 먹어 치운 뒤 다시 수풀 속으로 사라진다.

주인공이 세 번째로 좀머 씨를 만나게 된 것은 그가 16살이 되던 해다.

그 즈음엔 좀머 씨의 아내가 죽어 그가 어떻게 생계를 꾸릴지 걱정되는 상황이었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주인공은 집으로 돌아가던 중 자전거가 고장 나 멈추는데 그때 호숫가에 서있는 좀머 씨를 보게 된다.

이윽고 그는 망설임 없이 호수로 걸어 들어가고, 주인공은 그 모습에 충격 받아 비명을 지르거나 구조요청을 하지도 못하고 그가 사라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본다.

좀머씨가 사라진 이후 마을 사람들은 그가 미쳐서 사라졌거나 폐쇄공포증으로 이민을 떠났을 거라 추측할 뿐 죽었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주인공은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을 가만히 내벼려 두라’는 그의 말에서 알 수 없는 힘을 느끼고 그가 죽었다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이 소설에서 좀머 씨는 주인공과 마을 사람들에게는 물론 독자에게도 미지의 존재기 때문에 다양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다.

“왜 그는 하루 종일 걸어야만 했는가?”라는 질문 때문에 이 소설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곤 한다.
▲ 파트리크 쥐스킨트

 

앞서 작가인 파트리크 쥐스킨트에 대해 얘기해보자면 그는 독일의 작가로 소설 ‘향수’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는 ‘좀머 씨’처럼 자신이 외부에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인물로 인터뷰를 청하는 기자들에게 “나를 좀 내버려 두시오!”라고 소리친 일화가 있을 정도다.

또 그는 자신의 소설을 독자가 해석하려 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고 밝힌 바 있다.

때문에 이 소설은 작가가 본인을 좀머 씨에 투영한 자서전격 소설이란 해석도 있다.

또 간단하게 ‘동네 바보 아저씨를 보는 아이의 이야기’로 해석할 수도 있으며 좀머가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죽음에 대한 남다른 태도를 가진 심오한 인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기자는 이 소설에서 ‘미지의 대상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는가’에 대한 화두를 얻었다.

사람은 본디 미지의 대상이 자신의 주변에 있는 것에 이질감을 느낀다. 때문에 그 대상을 자신의 인지범위 안에 두기 위해 무시하거나 혐오하거나 숭배하는 등의 방어기재를 펼친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주인공을 포함한 마을사람들은 좀머 씨를 마을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듯하면서도 이상하리만치 관심을 두지 않는 복합적인 모습으로 묘사된다.

결국 그가 이 소설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바는 미지에 대상을 이해하려 하는 것도 좋지만 있는 그대로 지켜볼 줄도 알아야한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때론 침묵이 곤란한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김승직 기자 reporter@nex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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